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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구의 시조산책] 김종 / 회문산 달그림자

임성구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3/06/18 [18:04]

[임성구의 시조산책] 김종 / 회문산 달그림자

임성구 객원기자 | 입력 : 2023/06/18 [18:04]

회문산 달그림자    

                            김종

 

 

1

시름 덮은 은회색의 저 밋밋한 산봉들

 

감돌아 소리를 죽인 골짜기의 개울물까지

 

더 이상 하늘의 침통은 입 열지 않았다

 

2

이 산축山軸 피안 천리는 애써 평안한데

 

초혼으로 타오르는 이승과 북망산천

 

헐벗은 바람소리만 제 슬픔처럼 울고 있다

 

3

예나 지금이나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산죽山竹에 달 그림자만 미륵처럼 현신할 뿐

 

불륜不倫의 묵시 하나가 문득 앞서 산을 넘다.

 

 

[임성구의 시조감상시름 덮은 은회색의 저 밋밋한 산봉들천천히 한 음 한 음씩 꼭꼭 씹어 먹()어야 행간의 단물이 배어 나온다. 정형을 다스리는 율격을 마음으로 짚어가면 감돌아 소리를 죽인 산골짝 개울물까지은유로 순해져서 이미지의 세계는 더욱 확장된다.

 

산죽에 달 그림자미륵처럼 현신하듯 정형을 빚은 화자 못지않게, 읽는 독자도 자연스럽게 그 깊이를 잴 수 있어야 좋은 시조다. 요즘 발표되는 시조들이 시조 아니기를 갈망하듯 경쟁하듯, 맛과 멋을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조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시조가 아니다. 시조는 그야말로 곱씹어 읽을수록 깊은 맛이 배어 나왔으면 좋겠다.

 

음보와 음보 사이 사유의 보폭이 넓고, 구와 구가 뚜렷하게 나눠지고, 장과 장 사이가 확실하게 구분되는 여백과 여운의 행간만이 시맛의 풍미를 즐길 수 있다. 그 시절의 역사 앨범을 들여다보듯, 나름 선배들의 좋은 시조를 골라 읽으면서 스스로 깊이 각성한다.

 

두 음보씩 정확하게 읽어가며 쓰고, 그 속에서 시조의 현대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 어떤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로지 올곧고 튼실해서 아름드리 시조 나무가 되길 희망한다.

 

임성구 시조시인(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초록영혼 성구

 

 

 

* 임성구(시조시인,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 이 기고는 시사앤피플〉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성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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