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이산’을 품고 살아온 영화배우 겸 가수 이설가수 이설은 죽지 않는다. 영원한 가수를 꿈꾸며...
[시사앤피플] 이명숙 기자 = 가수 이설 씨(69)와의 인터뷰는 지난 10일 한 행사장에서 이뤄졌다. 우연히 한 가수로 만났지만 고향 분이란 정서 교감이 이뤄져 그 옛날 얘기를 꺼내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었다. 그가 가진 애향심과 가요 사랑, 그리고 그의 삶을 통한 연예계 얘기, 그리고 인생 스토리는 흥미로웠다. 그와의 대화를 정리해 본다(註)
가수 이설은 고향 얘기를 맨 먼저 꺼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저는 참 좋은 곳에서 태어난 것 같다”며, 진안 마이산 얘기를 시작했다. 그에 의하면 ‘마이산’은 전북 진안군에 있는 신비의 산이라 했다.
이 산은 두 개의 거대한 봉우리가 말의 귀처럼 솟아 있어 ‘마이산(馬耳山)’이다. 조선 태종이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과 이성계가 이곳 은수사에서 물을 마시고 새 왕조의 꿈을 키웠다는 전설 등을 전해줬다.
마이산은 보통의 흙산이 아니라 화산 활동과 지각 변동으로 형성된 역암(자갈이 굳어진 암석) 바위산이다. 서쪽 암마이봉(686M), 동쪽 숫마이봉(680M)은 풍화작용으로 인해 벌집처럼 작은 구멍이 숭숭 나 있어 아주 독특하고 신비롭다고 했다.
가수 이설은 “나는 이 산을 매일 바라보면서 성장했다”며, “내가 이 산을 가슴 속에 안고 살아가면서 짙은 향수를 품어 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진안 홍삼 축제를 비롯 고향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빈번하게 참석한다”고 했다.
진안 출신 영화배우 겸 가수 이설(본명 이한숙)은 1986년 ‘공포의 외인구단’(이장호 감독)에서 동기 엄마 역을 맡았던 게 영화계 데뷔 스토리다. 영화배우 이한숙은 1983년 ‘어둠의 딸들’(김문옥 감독)에서 경아의 사생활 첫 씬을 배역했다. 이 밖에도 관동관 소화자, 시라소니 조상구, 깜동’ 등 약 2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후 30년이 흐른 2015년, 트로트 가요 ‘쏴쏴쏴’ 노래를 작사하고 노래를 불러 가수로 데뷔했다. 이어 트로트 ‘내 남자’을 작사하고 노래를 불렀다. 또한 ‘동호천사’를 작사해 작사가로도 활동을 했다.
이 무렵 2017년 강남시니어모델 소속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입퇴장식, 고양 국제꽃박람회 입퇴장식 등 다수의 행사에 모델로서 출연해 모델로서 폭넓은 활동을 하게 됐다. 이 무렵 그는 엔터테이너로서 그랜드슬램(배우, 가수, 모델)을 달성한 셈이다.
그는 가수 데뷔 시절 저음 가수 문주란이 뜰 때여서 ‘이설‘의 목소리가 문주란 같은 중저음이라며 “제2의 문주란이란 가요계의 평가가 나와 꽤 재미를 보았다”고 했다. 당시 종로 작곡자들이 ’일본에 가서 노래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제안이 수 차례 있었다.
그는 그 때 ’동숙의 노래‘ 음반을 냈다. 그 당시 상당한 붐이 일어나 가수로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여러 작곡가들이 일본 진출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며, “주체도 없는 소문엔 ’한국 가수를 일본으로 팔아 넘긴다’는 낭설이 파다해 나는 이를 포기했다”고 회고 했다.
가수는 누구나 가슴 속에 ‘인기 가수‘ 도전이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도전하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가슴 한 켠에 한 맺힌 응어리가 있게 마련이다.
2015년 10월 경, 그는 “한 선배가 더 늦기 전에 중저음의 매력적인 문주란 선배의 노래에 도전해 보자는 격려에 힘 입어 그는 노래를 꽤 열심히 했다”며, “이 당시 활동을 많이 해 여기 저기에서 트로피와 상장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무궁화꽃스타상 수상(‘15.12.22),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상‘(정통 트로트 인기 가수상/’17.12.21) 등은 이 당시 받은 상들이다. 그 무렵 ‘선데이 서울’이란 잡지(1988)에 자신의 기사가 나와 가수 이설로서 유명세를 타게 되자 불러주는 곳이 많았다고 했다.
가수 이설은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좀 더 열심히 노력했으면 톱가수가 됐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며, 지나버린 세월을 아쉬워했다.
그는 어릴 적 노래를 잘 부르는 고모 한 분이 있어 ”그 때부터 그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시골 출신이지만 꽤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외갓집은 양조장 집이었고, 중학교 때 전주로 유학을 하게 돼 중앙여중을 다녔다.
그는 2남 5녀 중 차녀로서 그 시절부터 예능에 끼가 있었다. 그는 ”근영여고를 다닐 때 친구 앞에서 노래를 잘 불렀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의 부친은 주말이면 결혼식 주례를 보러 다녔고, 오빠 이한기 씨는 진안군의원(3선), 전북도의원(1선)을 역임했으며 군수 출마까지 했던 지역 명사였다. 그는 ”나름 모든 여건이 좋았던 것 같았다“며 그 옛날을 회상했다.
하지만, 완고하신 부친이 연예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그가 연예계 진출하는데 반대를 하셨기 때문에 부친 몰래 연예계에 발을 딛는 것이 상당히 애로가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나는 이와 관련 해 마음 고생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밝혔다.
가수 이설은 이번 인터뷰에서 ”이제 시니어 연예인으로서 마음을 비우고, 각종 행사에 가수로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고향 행사에 참가해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게 마냥 좋다“고 했다.
그는 ”맥아더 장군의 어록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는 말을 인용“하며, ”‘가수 이설은 죽지 않는다. 다만 잊혀질 뿐이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건강하게 지내면서 노인들께 ’밥퍼 봉사‘를 하고, 떡국 잔치를 꼭 해 드리고 싶다”고 하면서 “100세까지 영원한 가수로서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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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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